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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법문

원력생과 업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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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0회 작성일 24-04-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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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개척해 깨달음의 길을 가자

 

송화가루 흩날리고 봄꽃이 도량 가득하고 나뭇잎은 연초록 빛깔을 머금고 온통 푸르름 가득하니 삭막했던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더없이 평화롭고 편안함을 느낀다.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 가장 큰 행사를 치른 탓인지 아직 봉축행사의 열기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부처님의 탄생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의 생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지혜롭고 뛰어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일찍이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고 그 중에서 남자로 태어나기 힘들고 그 중에서 출가해서 수행하기 힘들고 그 중에서 도를 이뤄 성불하기 힘들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운명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해탈의 길 가기 위해 노력

이 생에 태어나는 생명이나 죽어서 가는 생이나 두 가지 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원력수생(願力受生)이요, 다른 하나는 업력수생(業力受生)이다. 원력수생이나 업력수생모두 전생에 지은 업력에 의하여 받게 되는 결과들이다. 쉽게 이야기를 풀자면 지금까지 닦은바 과보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업력수생이 운명에 그냥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면 원력수생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깨달음의 길 해탈의 길로 가려는 노력 보살의 길로 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바국토에 오기전에 이미 보살로서 500생의 수행을 통해 깨달은 성자로서 도솔천에서 이 땅을 살피다가 법을 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땅이 어디인가 살피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려고 이 땅에 강탄하신 것이다.

혈육과 권세와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를 한 것은 보살의 서원이 아니면 하기 힘든 결정이 아닐까? 작은 권세도 휘두르기를 좋아하고 재물에 눈이 멀어 서로 헐뜯고 가족조차 죽이는 범부들에 비교한다면 참으로 위대한 성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몸소 보이셨다. 삶의 고통도 보이셨고 수행의 과정도 보이셨고 깨달음의 결과도 보이셨다. 우리들에게 명확히 보이셨다. 그 길을 따라서 오면 정토의 세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문제는 우리들이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쪽은 욕망에 좇아 운명에 자신을 맏기는 것이요 다른 한쪽은 고행(苦行)과 난행(難行)을 통해 운명을 거슬러 정토의 세계를 향해가는 길이다. 두 개의 길 가운데 하나는 쉽지만 그 끝은 짠 바닷물이 있고 다른 하나는 무척 어렵지만 도달하면 달콤한 일급 청정수가 기다리고 있다.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할 뿐이다.

삶을 살면서 작은 것 하나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경험하고 바꾸려고 몸부림친다. 주변의 예를 들면 요즘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 점점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있지만 건강에 좋지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결심을 해보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작은 담배하나 못 끊는 결심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만이 심각한데 음식조차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무슨 수행을 할 수 있을까. 수행은 결코 먼 곳에 깊은 산속에 있지 않다.

우리들 일상 속에 잘못된 행동 잘못된 습관 등을 고쳐나간다면 그곳에서 아름다운 수행의 향기가 나온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했듯이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수행 하느냐에 따라 향기롭기도 하고 비린내가 나기도 한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하나 실천하다보면 우리가 세운 원력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하는 기본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부처님의 원력생을 생각해 본다.

[불교신문 2720호/ 5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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